다같이 걷자 한반도 한바퀴

입력 2022-03-31 17:40   수정 2022-04-01 02:00


“처음엔 그냥 걸었어. 비도 오고, 기분도 그렇고 해서.(중략) 미안해, 너의 집앞이야.”(‘그냥 걸었어’, 임종환)

“걷다가 보면, 항상 이렇게 너를, 바라만 보던 너를 기다린다고 말할까.”(‘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거야’, 장범준)

1994년과 2019년 가요계를 흔든 노래 두 곡이다. 25년이라는 세월의 간극에도 두 노래의 가사는 닮아 있다. 무작정 길을 걷다가 문득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고, 고백을 결심하는 서사는 긴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설득력 있다. 사람은 오랫동안 ‘걷기’라는 단순한 행위 속에서 내면을 들여다보고, 인생에서 가야 할 방향을 깨달아 왔기 때문이다.

영화 ‘와일드’의 주인공 셰릴(리즈 위더스푼 분)도 가족을 잃은 뒤 배낭 하나 짊어진 채 길을 나선다. 그가 걷는 길은 미국의 유명 트레일 코스인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4260㎞) 중 1700㎞ 구간. 하루 20㎞씩 걸어도 최소 3개월을 걸어야 하는 곳이다. 발이 부르트고, 끊임없이 위기가 나타나지만 그는 매일 다시 길을 나선다. 그리고 걸음 속에서 아픔을 치유하고 인생의 2막을 직접 선택한다.

꽃 피는 춘삼월(春三月)을 지나 여느 때보다 걷기 좋은 계절이 왔다. 이번 주말에는 봄바람을 맞으며 노래나 영화 속 주인공처럼 한번 걸어보는 건 어떨까. 장기화한 코로나와 긴 겨울 속에 ‘동면(冬眠)’에 들었던 몸과 마음을 깨우고, 어지러웠던 머릿속을 정리하는 데 걷기만큼 좋은 행위도 없다. 건강은 덤이다.

올해는 더욱이 한반도 가장자리를 잇는 ‘코리아 둘레길’이 완성되는 해다. 동해 해파랑길, 남해 남파랑길에 이어 서해를 품은 서해랑길이 최근 열렸다. 삼면의 푸른 바다를 품은 한반도 국토를 한 바퀴 빙 둘러 걸을 수 있게 되면서 걷기 마니아들의 발걸음이 각 해안을 향하고 있다. 길마다 다른 해변의 매력과 거기에 어우러진 자연이 손짓한다. 해외 여행길이 조금씩 열리면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등 ‘버킷리스트’로 간직해 온 명품 트레킹 코스에서 걷기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도 생겨나고 있다.

걷기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목적지를 자신이 정하고,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길이든 상관없다. 자신만의 템포로 정처 없이 걷다 보면, 놓치고 있던 삶의 중요한 부분이 문득 떠오를지 모른다. 미국의 고전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을 품은 채 우선 한 발 내디뎌 보자. “내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내 생각도 흐르기 시작한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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